김상덕
하이브리드적 현대인의 이중적 자아
1
작가 김상덕의 관심은 줄곧 현대문명과 인간소외 현상 그에 따른 실존에 대한 태도를 묵묵히 고수해왔다.
세상의 모든 삶과 죽음 대한 교감과 그것에 관련한 의식과 기억을 통해 오랜 관찰과 사색을 끈적끈적하고 질척한 유화 재질감으로 작품에 쏟아 붓는다.
그의 초기작 대부분은 실내와 욕조, 세면대를 배경으로 드리워진 음습하고 부자유스러운 육체가 널브러지거나 부유하고 고독하게 설정되어 있다. 대부분 육체는 반듯하지 않고 이런저런 방식으로 엉클어져 정상적인 형태보다는 비정상으로 동질성보다는 이질성이 강조되어 있다. 이들 육체는 어떤 구체적으로 행동을 취하기보다 그냥 그 자리에 널브러져 정지해 있으며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푸줏간에 고깃덩이처럼 박제되어 그냥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관객이 보기에 별로 유쾌하지 못한 육체와 실내의 부가적인 설정은 인간의 내면 존재의 불안과 두 번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섬뜩한 분위기를 연출하여 즉물적으로 설정된 화면 전후의 스토리를 대략 추정할 수 있게 만든다. 작품 저변에 깔린 메시지는 인체를 왜곡 변형하고 기괴한 상상력을 증폭시켜 자아의 욕망에 매몰되어 있는 현대인의 정신병리 현상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2.
초기작을 맥락으로 볼 때, 최근작은 여러 가지 조형으로 진화하여 기존의 육체가 변형되고 동물로 의인화된 양상으로 변화를 거듭하면서 작품 기조에는 현존재로 일컬을 수 있는 인간을 대리하고 살아간다는 의제를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인간의 몸통과 토끼 머리의 결합된 모습 등 결합과 변이를 반복한 돌연변이 즉 자연과 생명, 인간 실존에 기초한 양상을 보여주는데, 머리 부분을 토끼로 설정한 것은 인간의 내면을 포장하는 도구이며 일종의 대리물로서 역할이다. 반인반수의 토끼 머리는 인간 신체에서 배아 된 고뇌하고 불안해하는 인간 심리의 이중적 자아를 대신 표출하고자한다.
이와 같은 토끼와 인간의 이질적인 결합은 하이브리드(hybrid)적 양식으로 잡종과 변이에 대한 현대의 문화적 충돌을 혼성, 이종, 혼합, 잡종이라는 의미를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대부분 반인반수는 말과 인간의 결합으로 표현하지만 뜬금없는 토끼처럼 온순한 동물이라는 상징성을 통해 인간의 오만 감정을 우회적으로 대신하고 인간의 실존적 자각에 관한 깨달음이 토끼에 이입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하이브리드적인 변형은 형상적 사물의 자연스러운 묘사와 상황을 재구성하고 모호하게 얽힘으로써 다양한 해석을 유도하여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처럼 하이브리드 양식은 다시금 몸통에서 다발 풍성처럼 잉태되어 나오는 양상으로 변화하기도 하고 상체를 길게 늘어뜨린 다양한 방식으로 파생되고 새로운 변곡점에 다다른다.
이처럼 하이브리드와 데페이즈망 기법은 화면에 역동성을 더해주며 강렬한 인상을 주는 거칠고도 빠른 붓질과 흘러내리는 물감 정리되지 않은 터치와 면이 이루는 초현실적 대상으로 신체 내부를 해체해 놓은 듯한, 눅눅한 이미지로 인간의 폭력성과 존재적 불안감을 상기시킨다. 또한, 서로 상이한 배치를 통해 화면에서 즉흥적으로 벌어지는 육체의 체액과 물감을 구별 지을 수 없을 만큼 긴박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또 다른 그림에서 얼굴이나 인체의 내부기관에 있어야 할 체액들은 물감과 한데 엉켜 범벅되고, 붓질이나 재질감, 육체 일부분의 표본 같은 시각적인 요소나 특정한 상황이 내러티브를 부각시켜 극적인 상상력을 유발한다.
이처럼 대부분 작품에서 분리되고 파편화된 인간의 몸뚱어리는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라 늘어나고 변형된 변이와 생성을 중첩하기 위한 것이다.
작가가 덩어리지고 파편화된 육체의 조각에 집착하는 것은 사회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영향 관계 아래 한 개인에게 다양하게 나타나는 복합적인 자아의 모습을 대체한 것으로, 타인이나 자아들 간의 충돌로 갈등하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보여주고자 함이다.
3.
인체의 변형과 그로테스크로 일관하며 인간 본성의 내면을 표현하는 김상덕의 작업은 세상의 어둠을 과감히 맞닥뜨려 외면하거나 숨기고 싶은 그러나 누구나 어쩔 수 없이 겪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과 어두운 일면을 담담히 작품으로 표현한다. 그럼으로써, 물질과 사회의 규격화에 눌려 신음하는 인간의 고뇌와 번민을 상상 공간을 빌려 해방시키고자 한다. 이는 이중 자아와 같은 정신분석학의 병리적 현상이 아니고서도 사람들에게 흔히 일어날 수 있는 그야말로 낯선 충돌과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 신음하고 있는 현대인의 병리현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역으로 삶의 열망으로 환원되어 나타나고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타자를 통해 또 다른 나를 돌이켜 보게 하는 진중함의 표현이다.
2020. 7
김선태.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