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정토, 어머니 산 태항산

 

김상철(동덕여대 교수. 미술 평론)

 

작가 성룡(成龍)은 산수화를 작업의 본령으로 삼고 있는 중국의 청년 화가이다. 화면에 드러나는 구도는 웅장하고 조밀하다. 더불어 필의 운용은 정묘하고 활달하다. 천변만화하는 자연의 오묘함을 거침없이 담아내는 화면은 그의 작업이 이미 일정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실경을 바탕으로 한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해석과 표현은 그만의 독특한 산수경을 구성하고 있다. 특히 대자연의 웅장함을 표현해내는 화면의 기세는 예사롭지 않다. 백록(白綠)을 위주로 한 적절한 담채의 구사로 산수의 신운(神韻)을 표출해 내는 화면 운용 역시 자신만의 방식을 확보하고 있음이 여실하다. 정치하고 정묘한 필의 구사는 웅장함에 오밀조밀한 섬세함을 더하여 보는 재미를 배가 시킨다. 그것은 마치 그의 필을 따라 산천을 유람하는 것과 같은 보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주지하듯이 산수화는 동양회화 전통의 중심을 이루는 화목이다. 산수화는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풍경화와는 달리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동양인의 시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독특한 장르이다. 이른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구체적 발현이자 표현인 셈이다. 오랜 역사적 발전과정을 거쳐 형성되고 발전해 온 산수화는 동양회화의 특수성을 대변하는 중요한 장르 중 하나이다.

사실 중국의 산수화는 몇 차례 기억할만한 변화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 당에서 비롯하여 여러 왕조를 거치는 동안 때로는 자연 자체에 특정한 의미를 두고 천착하기도 하고, 또 시대 상황에 따라 현실의 질곡을 벗어날 수 있는 이상향으로 제시되기도 하였다. 근대에 이르러 잦은 전쟁에 따른 종군화가들의 사생과 서구미술의 유입으로 실경이 강조되기도 하였다. 특히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산수화 자체가 일정한 계급 관계를 드러내는 부르주아적 장르라는 비판을 받아 매우 곤란한 지경에 들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다시 산수화가 부활하기 시작한 것은 전통의 유장함과 더불어 동양인들의 자연관, 세계관을 내재하고 있는 산수화의 전통성과 특수성에서 기인한 끈질긴 생명력의 발현이라 할 것이다.

작가는 중국의 명산인 태항산(太行山)에서 나고 자란 화가이다. 남북길이 약 600km, 동서길이 250km에 걸쳐있는 험준한 산맥으로 중국의 그랜드 캐니언으로도 불리는 명산이다. 특히 하북(河北)의 평야 지대와 북쪽의 독특한 풍광을 지닌 황토고원의 경계를 이루며 산서(山西), 하남(河南) 등의 지역을 아우른다. 산세가 웅장하고 골이 깊어 수많은 절경과 비경을 품고 있기에 수많은 문인과 화가들이 태항산을 찾고 노래하였다. 특히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가 비롯된 곳이며, 동양 화론의 중요한 저작 중 하나인 형호(荊浩)의 <필법기>(筆法記)가 바로 태항산을 무대로 쓰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작가가 태어난 신락(新樂)은 태항산 중에서도 중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작가에게 태항산은 마당이자 놀이터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더욱이 붓을 들어 화가의 길로 들어선 이후에는 더더욱 태항산의 풍광들은 그의 심중에 켜켜이 쌓였을 것이다. 어찌 보면 작가가 산수를 자신의 진로로 설정하고 태항산을 주 대상으로 삼은 것은 극히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필촉으로 표현된 태항산은 때로는 웅장하고 거대한 양강(陽剛)의 남성적인 강직함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또 때에 따라서는 포근하고 수려한 음유(陰柔)의 아름다움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시점을 취한 그의 화면은 과장된 표현을 자제하고 대상의 객관적인 실체에 접근하고자 하는 실경적인 가치를 근간으로 삼고 있다. 공간의 구성에서 구름이나 안개를 적절히 배치하여 깊이를 더하고 여기에 특유의 백록색(白綠色)을 더하여 수묵의 맛을 북돋고 신비감을 더하고 있다. 이러한 전반적인 얼개는 중국 현대 수묵산수화의 성과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불어 준법의 구사에 있어서 필도(筆道)의 유창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바위 등의 질감 표현에 주목하는 것은 전통적인 관념에서 탈피한 합리적인 표현을 추구하는 작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해석된다. 그는 2019년의 개인전에서 “오늘날의 관념과 생활방식은 과거와 다르기에 우리는 전통의 토대 위에서 새로움을 창출해 내어야 한다. 그것은 옛사람들의 필법이나 기교를 답습하고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이 깃들 수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가지 않은 길(野道)을 필요로 할 뿐 아니라 홀로 걷는 외로움을 감수하여야 한다. 스스로를 고독한 수행의 길로 들게 하여야만 옛사람들을 초월하여 자신만의 풍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길(野道)에서 자신만의 오염되지 않은 영혼의 정토(淨土)를 찾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작가는 이미 중국 미술가협회의 회원이자 창주(滄州) 사범대학의 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중국에서의 활발한 활동과 주목할만한 성과를 뒤로하고 한국에서의 유학을 선택한 것은 그가 말한 바와 같이 스스로 ‘야도’에 자신을 내놓은 것과 같다. 전반적으로 작가의 작업은 중국 현대 산수화의 성취를 대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작업은 이미 일정 부분 인정받고 있음 역시 그의 경력과 활동을 통해 확인되는 바이다. 이에 더하여 한국의 실경과 산수화의 현대화 과정에서의 경험이 더해진다면 그의 작업은 다시 일변하여 새로운 단계에 이르게 될 것이라 여겨진다. 그는 스스로를 독행(獨行)의 길로 몰아넣었으며, 수행과도 같은 자세로 산수에 천착하고 있다. 태생적인 배경과 더불어 타고난 재능, 그리고 성실하고 부단한 노력과 열린 의식은 그가 추구하는 ‘영혼이 깃들 수 있는 곳’을 확보함에 가장 유력한 수단이자 도구가 될 것이다. 그의 용기와 기개에 경의를 표하며 그가 추구하는 ‘영혼의 정토’를 더불어 기대하는 바이다.

 

연석산우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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