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미

치유와 공생을 꿈꾸는 순례길

 

이문수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현란한 현대미술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술가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많은 전문가는 진정성과 독창성을 제시한다. 남의 작품을 표절하거나 모방에 모방을 더해가는 미술가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김정미는 매일매일 선을 긋는다. 어림잡아 5년 전부터 지극히 이성적인 필기구인 볼펜, 감각적인 자유를 통제하는 수단인 자를 이용한다. 왼손에 쇠자를 힘주어 누르고, 오른손으로 선을 긋는다. 그 결과로 개념적인 선들이 겹쳐서 일견 면으로 다가오지만, 무수한 선들이 파놓은 골들이 노동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자기만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조형적인 미학을 구석에 던져 버리고 ‘진정성’만을 위해 예술적인 순례길을 걷고 있다.

 

자를 이용해 볼펜으로 누구나 해 본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매일매일 네다섯 시간 이상을 몰입해서 자폐적인(?) 행위를 거듭할 수 있는 것은 비범한 일이다. 일상에서 피할 수 없는 번잡한 생각들이나 고민이 반복적인 행위와 시간 속에 시나브로 녹아들어 모든 대상과 그것을 마주친 주체 사이에 아무런 구별이 없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황홀경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가 현실로 깨어나오는 각성의 과정이자 결과물이다.

 

공생이 어려워진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기생충>, 공생(共生)을 꿈꾸는 것 자체가 점차 공상(空想)이 되어가는 현대 사회의 눅눅한 실상을 보여준다. 전원 백수인 기택네 가족의 반지하 집, 언덕 위의 박 사장 저택. 기우가 면접을 보러 가는 동안 오르는 계단들과 다시 반지하 집에 이르기 위해 내려가야 하는 계단들. 이것은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기능을 넘어 현대 사회의 수직적 질서에 대한 메타포이다. <기생충>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악한 의도가 없다. 하지만,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 사장의 말처럼 선을 넘는 사람들을 제일 싫어한다.

 

우리는 저마다 선 긋기를 하면서 살아간다. 그 선의 층위와 결이 다름을 용인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각자가 그어 놓은 선을 넘으면 참지 못한다. 김정미는 무수한 선 긋기를 통해 선을 면으로 치환함으로써 우리에게 넌지시 청한다. “같이 잘 살면 안 될까요?”라고. 지극히 단순한 방법으로 진정성 있게 자기를 치유하는 미술가의 숨소리와 발언에 귀 기울여보자.

연석산우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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