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지
I'm not ok로의 미학적 산책
그의 작업은 화려하거나 시선을 자극하지 않는다. 그보다 그의 작업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한편의 시를 음미하듯이 다가서야 조금씩 그의 이야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의 작업은 때로는 일종의 수수께끼를 푸는 것과도 같으며, 때로는 우리의 일상에 젖어있는 마음에 던지는 하나의 물음과도 같다.
그의 작업들은 숫자 9, 음표들, 노란 선, 그린이란 단어를 빨간 색으로 뒤덮은 단색의 그림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들은 얼핏 보면 전혀 서로 다른 기호들로 구성되어 있어, 그 기호들은 서로 연관성이 없이 나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하나하나 그 기호들이 지닌 의미들을 음미해 가다 보면 그것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우선 그의 작업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린이란 단어가 빨간 색으로 칠해져 있는 <빨간색 그림>이다. 이 작업은 작가가 그린란드라는 항공기가 단어의 의미와는 달리 비행기의 바탕색이 빨간 색으로 칠해진 것에 착안해서 그린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일까?
<빨간색 그림>의 의미는 작가가 자신이 쓴 작업 노트를 통해 탐색해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 노트에서 “강은지, 나는 알맞지 않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임의로 붙여진 이름이고, 정확히 지시하는 이름이 아닙니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그의 <빨간색 그림>의 작업은 소쉬르가 기표와 기의 간에는 어떠한 필연적이며, 고유한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인 것이라는 의미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며,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표와 기의 간의 본질적인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무엇보다 <빨간색 그림>의 작업은 기호가 지닌 기표와 기의와의 상관관계를 그림의 소통과 가치문제에 대비하여 풀어내고 있다. <빨간색 그림>은 작가가 임의로 그린 그림을 일방적으로 소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감상할 사람의 이야기를 작품에 삽입하고, 그것을 대여해 주어 소통하게 하는 방식이다. 달리 말해 그것은 그림이 지니고 있는 의미의 문제와 가치문제를 그리는 사람의 중심에서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감상자 간의 상호 관계를 통해 그 의미와 가치문제를 탐색하며, 찾아가고 있다.
그의 작업은 이번 전시에서 기호의 자의성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다. 그의 작업은 기호의 자의성에서 <내일>이나, 또는 <별을 봐요>나 또는 <α 999>에서 보듯이 기호들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들이나 또는 <12 notes>, <21 notes>와 <I'm not ok>에서 보듯이 사물이 지닌 이치를 통해 사물의 본질적인 문제를 탐구하며, 그것을 통해 인간의 본질에 비유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그가 <내일>이나 <별을 봐요> 또는 <α 999>의 작품들에서 내일이나 별이나 α 999가 상징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가 <내일>이나 <별을 봐요>의 작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내일이나 별의 의미가 단순히 단어의 의미만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일의 의미는 <내일>의 작품에서 숫자 9의 상징과 파란색의 상징을 해석함으로써 그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내일>의 작품에서 숫자 9의 상징은 아라비아 숫자 9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내일>의 작품에서 숫자 9의 의미는 작가가 브라이언 그린의 <우주의 구조>에서 차용해 온 의미로 무질서를 상징하는 숫자이지만, 또한 양자 역학의 이론으로 설명하는 브라이언 그린의 <우주의 구조>에 의하면 우리는 우주 전체와 얽힌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숫자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일>의 작품은 그 의미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12 notes>, <21 notes>의 작품과도 연결되어 있다. <12 notes>, <21 notes>의 작업은 풍선초 잎들을 드로잉하고, 그 잎들의 접점을 음표로 만들어 앱의 연주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소리를 들려주는 작업이다. 나뭇가지 모양은 프랙탈의 원리처럼 단순한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전체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작가는 그 나뭇가지의 잎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각자가 개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잎들의 모양을 확대한 소리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
무엇보다 작가의 생각을 잘 대변하고 있는 작품은 <I'm not ok>이다. <I'm not ok>는 덩굴식물(풍선초) 버팀으로 사용하던 지주대를 혼합재료와 함께 전시한 작품이다. 지주대는 철사로 된 재료이지만 덩굴식물(풍선초)의 버팀으로 사용되고 나서 약간 휘어지게 된 것을 그대로 전시한 것이다. 덩굴식물(풍선초)이 연약하여 철사는 버팀으로 사용해도 괜찮겠지 생각하는 것은 작가는 우리의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즉 우리가 우리의 일상의 삶 속에서 우리의 선입견으로 괜찮을 거라고 판단하는 많은 것들이 버팀대와 같이 섣부른 판단일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업들은 작업들 하나하나를 보면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처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빨간색 그림>에서 제기하고 있는 기표와 기의 간의 자의성의 문제는 <내일>의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앤트로피의 의미나 <12 notes>, <21 notes>의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프랙탈의 의미와는 다르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빨간색 그림>들 중간에 <내일>이라는 작업을 중간에 배치한 2015년도의 작품에서 이 두 개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미학적 사유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내일>의 작품과 <12 notes>, <21 notes>는 소재로 보면 전혀 다른 맥락처럼 보이지만 부분이 전체를 닮는다는 프랙탈의 이론을 전제로 하는 <12 notes>, <21 notes>의 작품과 무질서라는 앤트로피의 이론을 전제로 하는 <내일>의 작품이 지닌 패러다임은 동일한 사유의 흐름을 지니고 있다. 즉 그의 작업들은 우주의 어떠한 것도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서로 간에 영향을 준다는 미학적 사유를 전제로 하여 소재와 형식을 조금씩 달리하면서 진행하고 있다.
그의 작업들은 바쁘게 살며, 강한 자극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이미지들이지만, 그의 작업은 바쁜 일상의 삶에서 한걸음 물러나 천천히 음미하다보면 조금이나마 마음을 돌아보게 되는 사색의 시간을 줄 것이다.
조관용(미술과 담론 대표,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