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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석

전신과 초상화, 그리고 이의 현대적 해석

 

김상철(동덕여대 교수. 미술평론)

 

 

동, 서를 막론하고 본격적인 회화의 역사는 인물화로부터 비롯된다. 동양의 경우 화론의 시작인 전신론(傳神論)은 바로 인물화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요구인 동시에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다. 인물의 표현에 있어 모양의 닮음 보다 그 인물의 정신상태, 즉 감정과 사상 등 내면적 내용의 표출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전신론은 기운생동(氣韻生動) 등의 이론으로 발전하며 동양회화 특유의 심미체계를 구축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물화에 있어서의 성취는 그야말로 괄목할만한 것이다. 특히 조선시대 초상화의 경우 그 수준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빼어난 것이다. 조선을 ‘초상화의 나라’라고 부를 정도로 크게 발달하였던 초상 미술은 우리 미술사의 커다란 성취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작가 장우석의 작업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는 전통적인 초상화의 재해석을 통한 개별성의 확보를 작업의 주 맥락으로 설정하고 있다. 일단 전통적인 초상화의 재료와 기법에 천착하여 그 실질에 접근하고, 이를 주관적인 해석을 통해 재가공함으로써 또 다른 생명력을 지니게 한다. 치밀하게 바탕을 다듬고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 점차 완성으로 접근하는 초상화의 작업은 그야말로 노동의 집적인 동시에 시간의 축적을 필요로 한다. 배채(背彩) 기법을 통해 색채의 깊이를 더하고 안면의 근육이나 인물의 작은 특징까지도 세세히 표현하며 다시 의복의 문양을 더하며 완성으로 접근하는 작업 과정은 지난한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전통 초상화의 실체에 접근하고자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법에 몰입하기도 하고, 또 때에 따라서는 특정한 문양이나 표현에 집중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 그는 재현, 혹은 모사를 목적으로 한 기능적인 것에 몰입하기 보다는 이의 해석을 통한 새로운 인물의 표출에 주목하고 있음이 여실하다. 그에게 전통적인 초상화는 작업의 근간을 이루는 화두인 동시에 극복해야 할 실체인 것이다. 이는 전통의 재해석이라는 작업을 지향하는 이들이 공히 마주하게 되는 본질적인 문제이다.

초상화의 요체가 ‘전신’이라 할 때 그것은 당연히 인물의 안면 표현을 통해 발현되게 된다. 극히 정교하고 치밀한 관찰과 묘사는 이에 필수적인 요구이다. 작가의 경우 이러한 요구에 대한 역설적인 해석을 통해 과감하게 인물의 안면 부분을 생략하거나 왜곡을 통해 이른바 ‘전신’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생략과 왜곡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대상이 되는 인물에 더욱 몰입케 하거나 상상의 여지를 확대하여 또 다른 상상과 해석을 유발한다. 이것이 바로 작가가 추구하는 전통의 재해석인 동시에 역설적인 ‘전신’의 실체인 것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전통의 재현과 창작이라는 민감한 문제에 대한 접점을 규정하고 해결하고자 한다고 이해된다.

인물, 혹은 초상이라 부르는 인물화는 ‘사진’(寫眞)이라는 말로도 불린다. 이는 대상의 외형이 아닌 진실 된 무엇인가를 포착하여 표출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본질이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감지되고 포착되는 추상적인 가치이다. 그것이 실존하는 인물일 경우 내용은 구체적인 조건으로 제시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초상화가 감상의 목적, 혹은 재해석된 또 다른 작품으로 가공될 경우 이는 오히려 보는 이의 상상력을 제약하는 또 다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작가가 인물의 생략, 혹은 함축적 표현을 통해 재현의 한계를 극복하고 또 다른 작업으로 재탄생케 하고자 함은 바로 이러한 점에 주목한 것이라 여겨진다. 결국 그의 작업은 극히 전통적인 것에서 비롯되었으며, 전통적인 가치의 인정을 전제로 진행되고 있지만, 이의 주관적인 번안과 해석을 통해 전통 초상화 본연의 의미와 가치를 전적으로 개별화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과 현대는 상충되는 가치이다. 전통이 과거 지향적인 것이라면, 현대는 오늘이라는 시간성을 요구한다. 전통이 안정적인 것이라면 현대는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다. 작가는 전통의 안정성 위에 자신이 속한 시대성을 더함으로써 그 미묘한 접점을 포착하고자 한다. 이는 전통의 재해석, 혹은 재발견의 보편적인 방법론이다. 작가의 경우 특정한 목적성을 지닌 초상화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더불어 세밀한 묘사와 진실된 표현을 전제로 하는 전통 초상화를 함축과 생략이라는 전혀 다른 조형 방식을 통해 해석해 냄으로써 일반적인 ‘전신’의 한계에서 벗어나 또 다른 해석과 상상의 여지를 제공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러한 방법론의 보다 적극적인 개진과 보다 과감한 실천은 작가가 당면한 문제라 여겨진다. 작가의 분발을 촉구하며 다음 작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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